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다문화를 넘어 진정한 민주사회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실현하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다문화를 넘어 진정한 민주 사회로
Realization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다문화를 넘어 진정한 민주사회로
맘프(MAMF) 축제를 아시나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창원 광장 및 용지 공원 일대에서는 여러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음악과 춤을 감상하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보며, 각국의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집니다.
맘프(MAMF)라 불리는 이 축제는 Migrant’s Arirang Multicultural Festival(이주민 아리랑 다문화 축제)의 약자로 세계 곳곳에서 온 이주민과 함께 하는 문화 다양성 축제입니다. 2005년 서울에서 문화체육 관광부 주최의 다문화 축제로 시작된 이후 2010년 제5회 축제부터는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주최하여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다양성 축제로 성장하고 있으며, 축제의 장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서로의 전통과 문화를 알아가고 또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국경을 넘고 인종을 넘어 모두 하나가 됩니다.
이주민,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갑니다. 맘프(MAMF) 축제도 세상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 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비단 오늘날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다른 문화와의 교류, 접촉, 충돌로 변화해 왔습 니다. 오늘날은 옛날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여러 사정으로 많은 이주민들이 와서 살고 있습 니다.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메워주며 우리의 노동 시장이 돌아가도록 해줍니다. 국제 결혼의 증가 또한 이주민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난민 수용에 따른 이주민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외국인 200만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대로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우리 재외 동포도 현재 7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첫 이민이 시작되었고, 1960~70년대에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이주민의 삶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깊숙이 자리한 이주민들,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상은 우리의 현실이며 전 지구적인 현상입니다.
다문화 사회란 무엇인가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인식 속에서 언어, 인종, 종교 등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이주민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 정부는 의식적으로‘다문화’라는 용어를 정착 시켰습니다. 다문화 사회란 한 국가나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과 문화가 섞여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경남 김해의 경우는 이주민 가정의 비율이 전국에서도 높은 편에 속하며, 거제 조선소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등지에서 온 이주민 9,000여 명이 모여 살고 있기도 합니다. 베트남 전통 음식 문화인 쌀국수와 짜죠를 우리 음식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텔레비전 방송에 서도 우리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우리보다 우리 말을 더 잘하는 외국인 들의 토크쇼를 보며 친숙함과 흥미를 느낍니다. 이렇듯 다문화 사회의 모습은 일상이 되어 우리 속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 노동 착취를 당하거나 임금 체불을 겪기도 하고, “너 다문화냐?”라며 다문화 가정에 대하여 편견의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외국인 범죄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이주민을 받아줘서는 안 된다며 다문화 사회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다문화라는 말은 이주민에 대한 공존과 포용이라는 긍정적 인식을 만들어가기 위해 정착시킨 말이었으나, 지금은 구별짓기나 차별성을 부각하는 부정적인 말로 인식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다문화라는 용어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노동 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 안산시에서는 2018년부터‘다문화’ 라는 용어를 폐기하고‘외국인 주민’이라는 명칭을 쓰기로 공식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문화가족 지원법’의 법률 제명까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맘프(MAMF) 축제의 정의가 다문화 축제에서 문화 다양성 축제로 바뀐 것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문화’를 넘어서 진정한 통합 사회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러한 갈등의 이유는 사실 용어에 있는 게 아닙니다. 본질은 이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차별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를 극복하는 의식을 가지고 국가나 지자체에서는 이를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이주민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입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으며 평등을 이유로 똑같아질 것을 강요 하지 않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주민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성, 반인종주의, 평등, 평화, 소통과 공존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우리 모두의 문화적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길 이며, 이것이 진정한 민주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우리 역사 속 다문화 사회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우리 역사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다문화 사회의 모습이 오늘날에 나타난 사회 현상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도 다양한 외래문화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는 것을 다음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답니다.
- 우리 지역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군에서는 다양한 계통의 외래계 문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중국 진나라의 청동 그릇이나 허리띠, 북방 선비족의 말갖춤, 서역에서 생산된 유리 그릇과 구슬, 일본계 청동 제품과 비취색 옥 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 백제의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라는 중국 남조 계통의 무덤 형식과 중국제 도자기, 일본산 금송을 사용하여 만든 왕의 무덤으로 당시 백제 문화의 다문화성을 잘 보여줍니다.
- 고려 시대에는‘내자불거(來者不拒)’라는 정책을 통해 이주민들이 고려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귀화 성씨 136개 중 60여 개가 고려시대에 시작되었으며, 고려는 ‘COREA(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대식국 상인들에 의해 서역 지방에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는 1627년(인조5년)에 제주도에 표류되어 관군에게 붙잡혀 한양 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후 훈련도감에서 일하며 병자호란때에도 출전하였고, 이후 이름을 ‘박연’으로 고쳐 포로를 관리하고, 대포 제조법을 가르치는 등 조선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오늘날처럼 ‘다문화’라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 과거에도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어우러 지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