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평화 통일!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실현하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 통일!
Realization
우리의 소원은 평화 통일!
한반도기를 아시나요?
여러분! 이 사진 속 장면을 본 적이 있나요?
이 장면은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을 하는 모습입니다. 흰색 바탕에 하늘색으로 한반도의 지형을 잘 드러내고 있는 한반도기는 남북한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국제 스포츠 대회 때 공동 입장을 하거나 단일팀 구성 시 사용 하기 위해 제작된 단일기입니다. 단일기 사용 논의는 1963년부터 있었으나 공식적으로는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때부터 시작 하여 이후 몇 번의 올림픽 때 사용되었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에는 사용되지 못하다가 2018년 평창올림픽 때 다시 사용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반도기의 사용은 남북한으로 분단되어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반영하는 모습이기도 하며, 또 우리 민족이 하루빨리 통일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통일이란 분단의 아픔을 딛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 왔어요.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민족의 당위성이라는 측면에서 통일은 마땅한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수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민족입니다. 비록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되었지만 같은 혈통과 언어, 문화를 지닌 하나의 민족이기에 분단은 당연히 극복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로 통일은 주로 경제적 이익과 국력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현재 남북한의 국방비를 다른 부분에 활용할 수 있으며, 남한의 우수한 기술력과 북한의 풍부한 자원, 그리고 노동력을 합쳐 세계적인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이 된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경기 침체의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이유보다 통일은‘평화’의 관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평화란 전쟁, 폭력 혹은 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휴전 상태인 우리에게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핵과 테러 등의 공포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고 보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6·25전쟁으로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몸소 경험하였습 니다. 죄 없는 무수한 인명이 죽고, 국토는 파괴되었으며, 곳곳에서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습니다. 전쟁은 이렇듯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가 처한 분단 상태는 또 전쟁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불안을 갖게 합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다시는 전쟁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없이 평온한 일상이 보전되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듯 통일에 대한 논의는 통일을 위한 통일론이 아닌 평화를 위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통일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을 향한 우리의 노력통일을 향한 우리의 노력
통일에 대한 논의는 6·25전쟁 무렵부터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6·25전쟁 중에 이승만 정권은 무력을 써서라도 통일을 이루어내겠다는 북진통일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에 반대하며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에는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한 통일 논의와 통일 운동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이 무렵의 통일 논의는 이념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전쟁으로 내 가족이 뿔뿔히 흩어진 상태이고,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몸소 겪고 있던 때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 대한 갈망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전개된 박정희 군부 정권기 에는 민주화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으며 자연스레 민간 주도의 통일 논의 또한 억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정부 주도로 다음과 같은 논의들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물론 남북 관계가 악화되어 통일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통일을 향한 남북한의 노력은 이렇듯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 주도의 노력
-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 공동 성명(1972년 7월 4일)
-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 1988년)
- 노태우 정부의 남북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 17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선언 (1991년 11월 8일)
-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12월 13일)및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1992년 2월 19일)
- 김대중 정부의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2000년 6월 15일)
- 노무현 정부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 남북 공동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2007년 10월 4일)
- 문재인 정부의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및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 제2·3차 남북정상회담
평화 통일을 향한 교류와 협력
‘누가 이 사람을 본 적 있나요?’라는 노래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가슴 미어지는 듯한 이 노래와 함께 KBS가 추진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진행되어 우리나라 최장 생방송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방송 첫날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KBS는 모든 정규방송을 취소한 채 당초 계획 보다 연장하여 방송을 진행하여 78%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였습 니다. KBS 사옥 주변은 헤어진 가족을 찾겠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곳곳에는 가족을 찾는 벽보가 나붙었습니다. 전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이 그 무엇보다 잘 드러나는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정부는 1985년 9월 20일에 이산가족 고향 방문 겸 남북예술단 상호 동행 방문 공연을 추진하여 남측 35명, 북측 30명의 이산가족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가족을 만났습니다. 분단 사상 최초의 민간인 교류였습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현재까지 총 21차례 실시되었으며, 현재는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이제 그 대상자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은 스포츠 경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앞서 살펴 본 한반도기도 남북 스포츠 교류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으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 것은 1991년 제41회 일본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였습니다. 남북 단일팀‘코리아’는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하였습니다. 우승 후 경기장에는 아리랑 노래가 울려퍼졌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응원단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여러차례 올림픽에서 남북한 공동 입장으로 스포츠를 통해 남과 북은 소통하며 협력했고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관광 사업을 통해서도 남북한은 교류와 협력을 진행하였습니다. 1998년 1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약 10년간 금강산 관광 사업이 이루어졌고, 비록 짧기는 하였지만 2007년 12월 5일부터 약 1년간은 개성 관광 사업도 진행되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분단으로 가로막혀 있던 북녘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이 되었습니다.
또 개성공단을 건설하여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노동력이 결합된 경제 협력을 이루었습니다. 2003년 8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개성공단에서 협력하여 일궈낸 누적 생산액이 약 4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개성 공단도 함께 문을 닫았습니다.
개성공단의 폐해는 남북이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살얼음 같은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두텁게 쌓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며, 노력에 비하여 얼마나 쉽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남과 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 5월 17일, 남북의 협력 사업으로 경의선의 문산-개성, 동해 선의 금강산-제진 경로로 남북간 열차가 시험 운행되었습니다. 멈춰 있던 철마가 분단을 뚫고 다시 달린 ‘역사적 그날’입니다. 이후 문산- 개성공단간 화물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으나 남북 관계 악화로 2008 년에 중단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중단되었으나 언젠가는 다시 철마가 달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외에도 학술 및 문화재 분야 교류 협력, 민족 언어 동질성 회복 교류 협력 사업도 진행중입니다. 특히 겨레말 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 사업을 추진하여 2018년까지 78.5%까지의 작업이 완료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평화 통일을 위한 경남의 노력
우리 지역 경남에서도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곳곳에서 남북 교류와 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경남통일딸기 사업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2006년 처음으로 경남통일농업협력회에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딸기는 저온성 작물로 온도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여름철이 판매중인 경남통일딸기서늘한 북한의 평양에서 딸기 모종을 증식한 뒤 다시 가져와 남한의 경남 밀양에서 이 모종으로 딸기를 재배하는 방식으로 협력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딸기는 마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고, 경상남도 교육청 급식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로 남북 간의 모든 교류가 단절되었습니다. 5년간 진행된 경남통일딸기 사업은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달리고 싶다! 백두산까지!’
이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창원의 통일 마라톤대회 구호입니다. 이 대회는 2001년에 시작되어 많은 우여곡절속에서도 6·15 남북공동선언의 뜻을 잃지 않고 지금껏 꾸준히 진행되는 유일한 통일 마라톤대회입니다. 2018년에는 창원 대표들이 이듬해 4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협의가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아쉽게도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6·15 경남본부는 창원 통일 마라톤대회와 평양국제마라톤대회의 교류 합의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마라톤은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부를 그날을 위하여
2000년 5월 24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학생들이 서울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어린이들과 평양의 어린이들이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며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긴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이 노래를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통일에 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아마도 분단의 상태가 더 오랜기간 계속된다면 통일로 나아가는 길도 더 어려움을 겪을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남과 북이 서로 마음을 모아 남북이 다시 평화를 위한 힘찬 걸음을 내딛고 통일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