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전쟁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들
경남의 민주·인권·평화,
어디까지 가 봤니?
[평화] 전쟁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들,
경남과 부산에 머물다.
경남의 민주·인권·평화, 어디까지 가 봤니?
[평화] 전쟁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이 땅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의 평온한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또는 경남으로 내려와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경남과 부산 곳곳에는 피난민들이 남긴 흔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50년 12월에는 흥남 철수 작전으로 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경남 거제, 통영, 마산을 비롯해 부산 등에 정착하였습니다.
한편 전쟁으로 많은 포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을 전쟁포로라고 하는데 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경남 거제에 포로수용소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없어도 되는 시설들이 생겼습니다. 경남과 부산에서 전쟁이 남긴 흔적을 만나 평화가 우리에게 왜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봅시다.
현장 체험 활동
경남과 부산에서 6·25 전쟁이 남긴 삶의 흔적을 만나 봅시다.
현장 체험 순서
① 부림시장과 창동 거리(경남 창원) → ② 거제 포로수용소(경남 거제) → ③ 아미동 비석 문화 마을(부산) → ④ 40계단 테마 거리(부산) → ⑤ 임시수도 기념관(부산) → ⑥ 임시수도 정부 청사(부산)
사진으로 만나는
현장 체험
현장 체험 활동 후 느낀 점을 적어 보세요.
창원 부림시장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352(부림동 32-444)
부림시장은 1900년대 마산항 개항 무렵 형성되어 일제 강점기에는 공설시장으로 발전하였는데, 6·25전쟁 중에는 어떤 물건을 원하더라도 모두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유명하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마산의 공업화로 인구 유입이 증가하자 노동자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즐겨 찾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명절이 되면 가족들에게 안겨줄 작은 선물이라도 사려고 부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은 ‘부림 공예촌’, ‘청춘 바보몰 먹거리타운’ 등이 들어서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제 포로수용소
→ 경남 거제시 거제중앙로 1849(고현동)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선이 일진일퇴하며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포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들을 전쟁포로라고 하는데 이를 수용할 포로수용소를 거제에 지었습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는 17만여 명의 전쟁포로가 있었습니다. 전쟁 으로 전선에서는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면, 포로수용소에는 친공과 반공으로 나뉘어 생존을 위한 또 다른 대립을 하였 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곳은 1983년에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 었고, 지금은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부산 아미동 비석문화 마을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로 50-26(아미동 2가 231-171)
전쟁으로 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밀려 들어오자 정부는 40여 곳에 분산 수용하였습니다. 이곳에 수용되지 못한 피난민들은 부산역과 국제시장 또는 부두 가까운 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아미동은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곳으로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돌아갈 때 미처 수습하지 못한 무덤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사람들이 판잣집을 지으면서 묘지의 비석들을 건축 자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아미동 이외에도 피난민 마을로는 당감동 아바이 마을, 소를 키운 막사를 개조해 만들어진 우암동 피난민 마을 등이 있습니다.
부산 40계단 테마 거리
→ 부산광역시 중구 해관로 61(중앙동 4가 36-3)
40계단은 1909~1912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복병산 아래 주택가와 해안가 매립지를 연결하는 통행로였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피난민들이 산 위에 판자촌을 짓고 살면서 이 계단을 통해 매일 일터로 나가고 식수를 구해왔습니다. 또 40계단은 영도대교와 함께 피난 중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상봉 장소이기도 하였고,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이기도 하였다. 피난민들은 40계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피난살이 고달픔을 달래보곤 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부민동 3가 22)
6·25 전쟁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으로 내려와 원래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였던 이곳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곳은 1950년 8월 18일부터 관저로 사용되었고 9·28 서울 수복 후 정부가 잠시 서울로 올라갔다가 1·4 후퇴 이후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 대통령 관저로 운영 되었습니다.
1983년 경상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겨가면서 1984년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단장되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 청사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임시수도 정부 청사는 원래 경상남도청으로 1925년 진주 에서 부산으로 도청을 이전하면서 지은 건물로서 6·25 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면서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습니다. 국회는 원래 부산 문화극장에 있었으나, 나중에 경상남도청 상무관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억류하고 구속한 부산 정치 파동과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는 제1차 헌법 개정인 발췌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임시수도 정부 청사 뒤편으로 대통령 관저(현 임시수도기념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